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방미는 1980년 발표한 데뷔곡 '날 보러 와요'와 '계절이 두 번 바뀌면'이 연달아 성공하며 가수로 완벽 변신했다. 방미는 허스키한 보이스와 미모로 198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에 등극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돌연 무대를 떠났다.
방미는 "박남정과 김완선 등 쟁쟁한 후배들이 등장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방미는 "이모가 운영하던 주얼리 매장을 인수해서 사업에 도전했다. 주얼리나 패션은 연예인에게 딱 맞는 사업체다.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A, 하와이, 제주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각각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방미는 자수성가 아이콘이 된 비결을 묻자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방미는 "아버지가 냉동 보관 사업을 하셨다. 수입이 괜찮아서 흑백 TV도 있고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살았다"며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방미는 "아버지가 화투를 좋아하셨다. 동네 어른들과 화투를 취미로 하다가 고질병이 됐다. 빚을 낼 정도로 점점 노름에 빠졌다. 10살이었는데 집에 빨간딱지가 붙더라. 가정형편이 급격하게 어려워지면서 이사를 수십 번 다녔다. 셋방살이를 하다 보니 단칸방과 지하를 전전했다. 그때부터 '성공하면 집을 꼭 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990년대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 후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로 180도 변신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던 방미는 "내가 철이 없어서 옛날에 (공개적으로) 얘기했던 게 좀 있긴 한데 부동산 투기꾼이 돼버렸다"며 오해를 산 것을 속상해했다.
방미는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80년대 가수 활동하던 당시에 방배동 아파트를 2400만원 주고 샀다. 이후에 여의도로 이사 갔는데 집을 사서 옮기다 보니 팔 때마다 조금씩 값이 오르는 걸 느꼈다. (방배동 아파트는) 2400에 샀는데 3500에 팔았다. 부동산이 사면 오르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관심을 많이 갖게 되다 보니 어디 공연을 가도 아파트를 보고 다녔다. 방송이 없는 날은 수시로 부동산 시세 체크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200억원대 자산가'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오해의 요소가 많았다"며 "말도 안 되는 200억 타이틀 때문에 제가 20년 동안 고생했다. 힘들게 고생해서 벌었는데 말도 안 되게 그런 타이틀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해외에서 놀면서 까먹은 게 100억"이라며 "이제 타이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작진이 "그럼 100억이 남은 거냐"고 묻자 방미는 "100억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출처- 스타다큐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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